안녕하세요 moneylife2234 입니다. 우리는 저번 시간에 경기란 무엇인가? 경기가 좋다는 것과 경기가 나쁘다는 것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경기가 어떻게 순환되는지도 알아봤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대한민국의 경기 흐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경기가 좋았다 나빴다를 우리나라도 반복하고 있습니다. 시대별로 우리나라가 어떻게 변화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1970년대 석유 위기로 맞은 불황, 석유 파동

1970년대 한국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1973년과 1979년에 두 차례 일어난 오일 쇼크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오일 쇼크는 1973년 중동 전쟁으로 인해 석유 공급일 줄어들며 유가가 폭등하였고
두 번째 오일 쇼크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석유 생산이 중단되면서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석유 가격은 급등하였고 대한민국의 경기에도 큰 악영향을 줬습니다.
수입 원자재의 가격이 상승했고 전체적인 물가가 상승하며 소비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기업의 생산도 줄고 경제 성장률도 둔화되었습니다.
이때 당시 우리나라는 평균 7%씩 경제가 성장하고 있었스비나. 그러나 2차 석유 위기가 발생한 다음년도인 1980년도에 -3.7%의 성장률을 보이며 처음으로 경제 규모가 후퇴했습니다.
2. 1980~1990년대 3저 호황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는 한국 경제에서 ‘3저 호황’이라고 불리는 시기였습니다. ‘3저’는 저유가, 저금리, 저 원를 의미하며, 이 시기에는 세 가지 요인이 한국 경제의 성장에 기여했습니다.
저금리로 기업이 사업 자금을 융통 할 때 부담이 줄어들어 투자와 생산을 많이 늘릴 수 있었습니다.
저유가로공산품 제조에 원가가 낮아져서 투자와 생산을 더 활발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저원 원화가 외국 돈의 시세보다 낮은 상태를 의미하는데 대한민국은 수출 기업이 많은 국가였음으로
한국 수출기업들의 수익이 극대화되며 전체적인 경제 성장을 견인하였습니다.
이러한 유리한 경제 환경 덕분에 한국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높은 경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이 성장하며, 한국 경제는 국제 무대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3. 엔 저불황과 재벌들의 몰락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3저 호황 때 기업은 미래들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스ㅡㅂ니다. 분업에서 덩치를 키우기에 급급해서 수익성보단 외형 위주의 경영을 하였습니다.
수익 위주 경영과 외형 위주의 경영의 차이점은 수익 위주 경영은 수량은 적더라도 질 좋은 고가의 제품을 생산, 판매해서 비용 대비 이익을 많이 내는 경영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빚을 적게 질 수 있습니다.
반면 외형 경영은 빚을 많이 져서라더라도 자산의 규모를 키우고 값싼 제품을 대량 생산,판매하는 방식입니다.
이익은 적게 내더라도 많은 매출을 발생시키는 방법입니다.
우리나라는 외형 경영에 몰두하는 기업이 많았고 사업규모가 커질수록 빚과 금융 비용등 사업 유지비가 많아졌습니다.
매출 대비 이익률은 적고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가 이어졌습니다.
이 때 은행도 기업에 자금을 빌려줄 때 수익성보다는 매출 규모를 기준으로 삼으면서 외형 경영을 부추기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외형 경영은 불황에 약합니다. 호황 때는 수요가 워낙 많기 때문에 박리다매의 형식이 이어질 수 있지만
불황이 오게 되면 박리다매가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엔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엔저 현상이 생겼습니다.
일본은 일제 수출품의 가격 하락 효과로 인해 수출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입했습니다.
수출에 의존하던 우리나라에 큰 경쟁상대가 되면서 우리나라의 수출이 줄어들고 이는 곧 경제 불황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엔저 현상이 오래가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던 많은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투자와 생산을 진행했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 엔저 현상과 일본의 수출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나라의 수출 상품들의 해외수요가 급감했고 생산품들의 재고가 많아졌습니다.
은행에 많은 빚을 지면서 경영을 하던 많은 기업들이 이자도 못 갚는 자금난에 시달리는 곳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1997년 연쇄 부도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4. 외환위기로 닥친 불황 (1997-1998)

1997년 엔저 현상으로 불황을 겪고 있던 대한민국은 외환 위기까지 맞게 됩니다.
외환위기란 대외 거래에서 필요한 외환이 부족해져 국민경제가 대외 거래 중단 위기에 빠지는 사태를 말합니다.
국제 거래에서 주로 쓰는 미 달러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달러 부족으로 외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엔저 현상으로 지속적인 수출이 줄어들며 우리나라의 달러 벌이는 좋지 않았습니다.
외채를 많이 사용하였고 대기업이나나 금융기관이 외국 거래처에서 진 빚을 갚지 못했을 때 국가신용도가 낮아지는 것을 우려해 정부가 대신 갚기 위해 보유 해놓은 외환보유고의 보유액이 이 바닥나고 있었습니다.
1997년 우리나라는 연말 만기가 돌아오는 대외 단기부채를 갚기 어려운 상황까지 놓였습니다.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줄도산 하고 있는 상황이였기 때문에 달러를 벌수도 빌리기도 부족해 외환을 메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국제 투기자본은 외환시장에서 원화가 폭락한다는 전망을 내놓고
원화를 대거 팔아치우며 환투기에 나섰습니다. 원화 폭락은 달러가 부족한 한국 경제에 외환위기를 가져왔습니다.
국내에 있던 외국 자본은 국내 자산을 팔고 달러를 매입하기 시작했고
국제 투기 자본은 외환 투기 공세를 쏟아내고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원화의 폭락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에 긴급 달러 융자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결국 IMF에 긴급 달러 융자를 공식 요청하였고 IMF는 서울에 사무국을 설치하고, 한국 정부에게 경제정책을 지시하고 통제하였습니다.
IMF는 구조조정과 경제개혁을 지시하였습니다. 금리를 올리고 기업과 금융기관은 단기 자산을 처분해 부채를 줄이고
빚이 너무 많거나 수익이 적은 기업은 과감하게 도려내거나 폐업을 시켰습니다.
이게 우리가 많이들 이야기하는 IMF시절의 이야기입니다.